일상 그리고 생각(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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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기고도 신성한 밥줄
4월 1일은 만우절이고, 5월 1일은 노동절이다. 둘 사이에는 엄연하게 한 달 차이가 있지만, 가끔 나는 노동절이 만우절 같다고 생각한다. 명확히 137년 전, 미국에서 하루 8시간 노동을 요구했던 시위가 기점이 돼 전세계적으로 이날을 기억하려 했던 것이 노동절이다. 그런데 유럽에서 사회주의자들이 나서서 이날을 기념하자 ‘원조’ 국가인 미국은 아예 노동절 날짜를 바꿔버렸다. 그래서 미국 노동자들에게 ‘원조’ 노동절은 노동하는 날이다. 대신 족보 없는 9월 어느 날 노동을 쉰다. 물론 쉴 수 있는 사람만 쉰다. 게다가 5월 1일에 노동절을 기념하는 나라는 많지만, 8시간 노동은 여전히 소식도 없다. 매년 노동자들이 거리로 나와 “여덟 시간아, 어디 있니” 하며 집 나간 아이를 찾고 있다. 그러니, 노동절은..
2023.05.03 -
솥이 위태롭다
밥을 퍼낸 솥바닥처럼 대통령의 지지율이 움푹 꺼져 있다. 대략 2할과 3할을 소폭 등락하는 추세인데 그것은 많이 쳐줘야 셋이다. 이 수치가 그가 시구한 야구의 타율로는 괜찮을지 모르나 지지율로 먹고사는 정치에서는 부끄러운 점수다. 열에 셋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는 술집에서 잘 나타난다. 대게 서넛 어울리는 술자리에서 3할은 겨우 한자리 차지할까, 둘이 마시거나 청년들(MZ세대) 자리에는 낄 의자가 없다. 이 정부 출범 초기, ‘취임덕’이라는 신조어가 나오기 전에는 잠시나마 4할을 넘길 때도 있었다. 그때는 잘한다, 못한다, 지켜보자는 패들이 갈려 큰 소리가 오가고 술집이 시끌시끌했었다. 불과 얼마 전인데 지금은 다투는 사람이 없다. 지켜보자던 사람은 고개를 흔들고, 잘한다던 사람은 입을 다물어버리니 술집이..
2023.04.18 -
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은 허리
40대 중반이 넘어가면서 아무리 근사한 곳에 가도 얼굴이 나오는 사진을 찍지 않는다. 좋아하는 배우(청년도 아니고 중견이었는데!) 인터뷰를 마친 뒤 함께 찍은 사진을 보고 강력한 현타가 온 다음부터 묵언수행 아닌 ‘묵찍수행’에 들어갔다. 얼마 전 거절하기 난처해 실로 오랜만에 취재 장소에서 사진을 찍게 됐는데 사진을 보고 더 큰 충격을 받았다. ‘어디서 오신 이모님’ 얼굴이야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데, 자세가 팔십 평생 고된 농사일로 뼈가 삭은 영화 속 할머니들과 너무나 똑같았다. 기운 없고 아픈 허리를 지탱하기 위해 가슴을 앞으로 쑥 내밀어 어깨가 뒤로 빠지는 그 자세 말이다. 나 역시 삼십대 초반부터 지속적인 요통에 시달려왔지만 허리 통증은 농부부터 돌봄노동자, 기자, 컴퓨터 프로그래머까지 현대인이면 ..
2023.02.02 -
설레는 의상
옷걸이에 걸린 상의(上衣) 하나, 설레고 있다 공중을 아랫도리로 삼고 주머니마다 어지럼증이 가득해 어느 바람에나 잘 흔들린다 단추가 없는 상의는 실이 꿰어진 바람의 눈이고 흔들리는 레이스는 피지 않은 바람의 깃이다 반나절은 하마터면 날려갈 뻔한 외출이었다 - 안은숙 시인 - 빨랫줄 옷걸이에 레이스가 달인 ‘상의(上衣) 하나’ 걸려 있다. 이른 아침에 일어나 밥을 하고, 남편과 아이들을 챙겨 보내고, 설거지와 청소를 하고는 널어놓은 빨래다. 연일 반복되는 일상은 심신을 지치게 한다. 아무리 쓸고 닦아도 티가 나지 않는 집안일을 마치고는 차 한 잔의 여유를 누린다. 살랑살랑 바람에 흔들리는 상의 레이스가 눈에 들어온다. 순간 옷걸이에 걸린 옷처럼 집안일에 묶여 있다는, 내 삶의 위치와 가치를 생각하다다 마음..
2023.01.16 -
팔자소관
이날치 밴드’는 걸출한 소리꾼 넷에다 베이스 기타 둘에 드럼이 합세한 퓨전 밴드다. 징글징글한 역병의 세월을 그나마 버티게 해준 ‘국뽕 열풍’에 한 바가지 기름을 더해준 그들의 히트곡 ‘범 내려온다’는 알다시피 의 한 토막을 달군 것이다. 간을 구하러 육지에 올라오느라 기진맥진한 자라가 토끼를 발견하고 ‘토(兔) 선생’을 부른다는 것이 발음이 헛나와 ‘호(虎) 선생’이라 소리치는 통에 에나 ‘범’이 내려온다는 살 떨리는 장면을 코믹하게 묘사한 노래다. 제 간 정도는 꺼냈다 넣기를 일 같잖게 할 수 있는 양 허풍을 떠는 토선생과 능란한 모사꾼 별주부가 벌이는 포복절도할 이야기의 그 토끼가 주인공 노릇 하는 묘년(癸卯年)이다. ‘계묘년’은 역사 속에 이렇다 할 굵직한 사건이 없어 그런지 낯선 간지다. 태양력..
2023.01.10